한국사능력검정 기본 기출문제·모의고사·오답노트·자동채점

2022년08월06일 42번

[과목 구분 없음]
다음 성명서가 발표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 ① 한인 애국단이 결성되었다.
  • ②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열렸다.
  • ③ 평양에서 남북 협상이 진행되었다.
  • ④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정답률: 42%)

문제 해설

정답> ③
'김구,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제목 아래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위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백범 김구(1876~1949)가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1948년 2월의 일이다(1948.2.10).
평양에서 남북 협상*이 진행된 것은 1948년 4월의 일이다.
*남북 협상: 1948년 4월 19일에서 23일까지 평양에서 '남북 연석 회의'[정식 명칭은 '남북조선(전조선)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뒤이어 남북한 주요 단체 대표들 간에 두 차례의 회의(4월 27일과 30일)가 또 열렸는데, 이를 '남북 지도자 협의회'[정식 명칭은 '남북조선(전조선)제정당사회단체지도자협의회']라 한다. 그런데 또 '4김 회담'이라고 하여 김구와 김규식, 김일성과 김두봉 간의 회담이 4월 26일과 30일에 각 진행되었다. 보통 엄밀한 의미에서의 남북 연석 회의는 4월 19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 본회의를 지칭한다. 그렇지만 현재의 통설은 4월 19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연석 회의 본회의와 남북 지도자 협의회, 4김 회담을 모두 통틀어 '남북 연석 회의'(이른바 '남북 협상')라고 부르고 있다.
오답 해설>
① 한인 애국단이 (중국 상하이에서) 결성된 것은 1931년 10월경*의 일이다.
*한인 애국단이 조직된 구체적인 일자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현재 없다. 한인 애국단이라는 명칭이 알려지기 시ㅏㄱ한 것은 이봉창이 도쿄 의거를 결행한 후, 1932년 9월 28일 김구가 한인 애국단장의 명의로 '동경작안(東京灼案)의 진상'이라는 글을 발표했을 때 이봉창을 '본단에 최선 가입한 단원'이라고 기록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봉창이 입단하기 직전에 조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이봉창이 한인 애국단에 입단한 날은 1931년 12월 13일).
②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서울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린 것은 1946년 3월의 일이다(1946.3.20~5.9).
④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가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것은 1945년 12월의 일이다(12.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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